불굴불퇴~Nunca desista~

TOKYOism2019.11.22

불굴불퇴~Nunca desista~

이것은 인생의 기록이다.

10대에 주머니 속에서 떨리는 손을 꽉 쥐고, 낯선 거리로 뛰어들었다.

굴러가는 미래를 붙잡기 위해, 꿈을 쫓는 사람은 도전을 계속해왔다.
가능성 너머에 본 것은, 지금의 나였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에이스는, 계속 달린다.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
구르는 공이 그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RO-RO 콤비를 동경한 소년

디에고 올리베이라 선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바라면서도, 그 출발선에 서기는커녕 예비군에도 들지 못한 채 10대 중반을 맞이하며 궁지에 빠져 있었다.

스트리트 축구에서 이름을 알리고, 소문을 듣고 온 클럽 관계자에게 스카우트되거나 중개인이声를 걸어 그 소개로 클럽에 가입하는――. 이것이 축구 왕국에서 일반적인 성공 방식이다.

하지만 디에고의 경우는 달랐다.

"지역 축구 스쿨에서 뛰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아서 고등학생이 되어버렸어. 나이 때문에 프로는 이제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브라질 남부 최대 도시이자 국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쿠리치바. 이 도시에서 지에고는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7살 위 형 비니시우스, 3살 위 누나 나타랴가 있고, 또 다른 누나 카밀라가 있어. 카밀라와 나는 쌍둥이야. 내가 카밀라보다 2분 늦게 태어나서 내가 남동생, 그녀가 누나인 셈이지."

형 비니시우스는 고향 축구 클럽인 파라나 클럽의 유스 팀에 소속된 유망한 선수였다. 남자아이가 부모에게 받는 첫 번째 생일 선물은 축구공――. 브라질은 그런 나라다. 디에고도 정신이 들었을 때 이미 형의 등을 쫓으며 공을 차고 있었다.

"그 당시 아이돌은 RO-RO 콤비였어. 로마리오와 호나우두지. 물론, 형 비니시우스에게도 동경했어."

지역 축구 스쿨에서 뛰면서 기회를 잡아가는 동료들에게 뒤처진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이 내는 빛을 의지하며 공을 차기 계속했다. 그런 디에고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6살 때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풋살을 시작한 타바 디에고는 쿠리치바의 유명한 풋살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그 팀 동료 두 명이 파라나 클럽의 셀렉션에 초대되었고, 운 좋게도 타바 디에고도 함께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나만 합격해 버렸어. 그래서 17살부터 파라나 클럽 유스팀에서 뛰게 되었지. 드디어 잡은 기회였어. 정말 기뻤어. 이 팀에서 프로가 되겠다고 생각했어."


꿈을 쫓는 이의 결단

축구 스쿨에서는 FW를 맡았던 디에고였지만, 파라나 클럽에서는 볼란치로 뛰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좀 상상이 안 되지만, "상대 팀의 10번을 마크하며 무작정 공만 쫓고 있었어"라고 디에고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알맞은 자리에 자리잡게 마련이다. 어느 경기에서 부상당한 선수를 대신해 전방에 투입된 디에고는 그곳에서 2골을 넣어 보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져서 FW로 전향했어."

18살 때는 유스 대회로는 브라질 최대인 상파울루 컵에도 출전했다. 프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기회도 늘어나고 있었다. 차근차근 꿈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8살에서 19살이 될 때, 톱팀에 승격하지 못해 파라나 클럽에서는 프로가 될 수 없었다"

결코 큰 클럽이 아닌 파라나 클럽에서 톱팀 승격에 실패한 선수가 브라질 내 다른 클럽과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지에고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꼭 붙잡았다. 브라질이 아닌 이국에서 프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카타르야. 나를 지원해주던 중개인이 소개해줬어. 카타르 2부 리그라도 괜찮다면 기회가 있다고. 정말 놀랐지. 카타르가 어떤 곳인지 몰랐으니까 불안했어. 하지만 카타르에 가지 않으면 프로가 될 수 없었어. 이건 기회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어."

이렇게 2009년, 19세의 디에고는 생활용품과 꿈과 희망을 여행가방에 담아 사막의 나라로 향했다.

지금은 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강화와 환경 정비에 힘쓰고 있으며, 대표팀은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알 사드를 필두로 상위권에 진출하는 클럽이 적지 않다.

하지만 디에고가 바다를 건넌 곳은 전년도 9월에 정식으로 프로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다가 2부 리그에 소속된 알 미사이마르였다.

"축구 수준은 높지 않았고, 환경도 좋지 않았다. 상상은 했지만 솔직히 놀랐다. 게다가 언어, 종교, 음식, 기후 등 온통 어려움 투성이였다. 하지만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잡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고생했지만 배운 것도 많다. 카타르에서 나는 인간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늦게 피어난 재능

카타르에서 2년을 보낸 지에고는 간절히 바라던 프로 축구 선수로서 브라질로 돌아가 노로에스치에 입단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수원 삼성으로부터 오퍼가 오자, 지에고는 다시 한 번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미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꽤 매력적인 오퍼였거든요. 저에 대한 대우도 좋았고, 노로에스치에도 돈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6개월간의 임대 이적이라는 조건으로 다시 아시아로 향했죠."

하지만 K리그에서는 도움군으로 활약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서는 모습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스포츠 헤르니아――. 이것이 당시 디에고를 괴롭힌 병명이었다. 단 3경기 출전에 그친 채 이적 기간 6개월이 지나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귀국 후에는 고향인 쿠리치바의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았고, 통증이 사라지기까지 추가로 4개월이 걸렸다.

그 후, 노로에스치, 바이아, 아우닥스, 노바리존치노, 보아, 리넨세를 거쳐 다닌 지에고가 마침내 빛을 본 것은 2015년에 소속된 브라질 1부 리그의 폰치 프레타에서의 일이다.

한때 베갈타 센다이에서 J2 득점왕에 올랐고, 2011년에는 브라질 대표팀에도 선출된 보르헤스와의 포지션 경쟁에서 이긴 지에고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볼헤스에게서 포지션을 빼앗은 것은 자신감이 되었어. 당시 나는 25살이었고, 축구 선수로서 전성기에 접어든 시기였지. 이 활약 덕분에 폰치 프레타로부터 계약 연장 제안도 받았고, 다른 몇몇 오퍼도 받았어."

그 중 하나가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서 온 제안이었다.

"내 중개인도 일본에서 뛴 경험이 있었고, 볼헤스뿐만 아니라 팀 동료들로부터도 일본 축구의 좋은 점을 많이 들었다. 게다가 브라질을 떠나 도전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일본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2년 후, 디에고에게 청적(靑赤)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찾아온다.

"정말 기뻤다. 사실 다른 팀들로부터도 오퍼를 받았었어. 그중에서 FC 도쿄를 선택한 이유는, 맞붙어 보니 좋은 팀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수도에 있는 클럽이기도 했기 때문이야. 실제로 와 보니 팀 동료들도 클럽 스태프들도 따뜻했고, 팬과 서포터들도 열정적이어서 매우 보람을 느끼고 있어. 나 자신도 도쿄에 와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게 되었고,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그 이후의 활약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디에고가 없는 FC 도쿄의 공격진은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돌아보며, 디에고는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라고 회상했다.

"신이 도와줬다고 느낀 적이 많아.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신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지"

하지만 말이지――라고 디에고는 말을 이었다.

“노력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어. 학교가 끝나면 매일 연습에 임해왔고, 10대 시절에도, 카타르에서도, 한국에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을 밑거름 삼아 열심히 해왔어. 어떤 때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 디에고에게는 지금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도쿄에서 반드시 타이틀을 따고 싶다. 선수, 팀 스태프, 팬·서포터가 기다려온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할 기회가 눈앞에 있다. 거기에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 하나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일본에서 플레이를 계속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도 일본에서의 생활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도쿄에서 계속 뛸 수 있다면 최고다."

한때 선두에서 내려왔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져 제31라운드를 마치고 다시 선두로 올라섰다. 아무리 힘든 경기 전개라도 끈질기게 싸우며 꾸준히 승점을 쌓아왔다. 네버 기브 업――. 이번 시즌 FC 도쿄의 싸움은 디에고의 축구 인생 그 자체다.

◇디에고 올리베이라 프로필



Kazunori Iino : 통역

글 Atsushi Iio
사진 Kenichi Arai, Masahito Sas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