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4월 29일(금·공휴일), 도쿄가 새 국립경기장에서 첫 J리그 경기를 치른다.
개수 이전의 국립경기장에서는 J리그 가입 첫 해부터 많은 공식 경기를 치러왔다. 기억에 남는 슈퍼 플레이도 있었고, 임팩트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타이틀 획득 이후, 도쿄가 모든 타이틀을 국립경기장에서 획득한 것은 도쿄와 국립경기장의 깊은 인연을 상징한다.
우리의 국립경기장.
This is TOKYO.
새로운 발걸음을 국립경기장에서 새기기 전에, 지금까지 국립경기장에 남겨온 발자취와 추억을 당시 사진과 함께 되돌아본다.
2004년 비 내리는 더비. 꽂힌, 카지야마의 일격
【경기 정보】
2004 J리그 디비전1 2nd 스테이지 제3절
FC 도쿄 1-0 도쿄 베르디 1969
그 한 방은 도쿄의 희망이었다――.
프리라이터가 된 지 얼마 안 된 초창기 시절이라고 쓰면, 사십이 된 내 나이와 노화를 느끼게 된다. 20대였던 나는 경기 후에 꼭 선배들과 식사하러 나갔다. 끊임없이 축구와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 그 자리에서 꼭 이름이 오르내리는 선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당시 나가사와 테츠 코치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다.
"하라 히로미 씨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 자주 그 녀석 이야기가 나오곤 해. '나는 저 녀석 같은 선수가 유럽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라고 말이지."
분명 도쿄 서포터들도 같은 선수를 안주 삼아 밤새 이야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거기에 카지야마 요헤이라는 선수의 매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2004년 8월 29일. 비가 내리는 국립경기장, 무대는 도쿄 결전(참고로 당시 공식적으로는 도쿄 더비라고 부르지 않았다). 등번호 23번이 날린 것은 너무나도 선명한 한 방이었다.

0-0으로 맞이한 후반 43분, 교체 출전한 카지야마는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공을 받았다. '이제 (리그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라'라는 하라 감독의 말이 귀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공을 오른쪽으로 옮겨 코스가 열린 순간, 망설임 없이 오른발을 휘둘러 화살 같은 궤적으로 골대 왼쪽 상단을 꿰뚫었다. 그 날카로움에 상대 골키퍼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카지야마에게 이것이 기쁜 J1리그 첫 골이 되었다.

연간 최고의 슈퍼골. 아니, 원정 경기 첫 승리였던 나비스코컵 가시마 앤틀러스전(4월 29일), 스페인의 강호 데포르티보전(8월 1일)에서도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중거리 슛을 꽂았다. 이런 신인의 등장에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함께 나눈, 당시 도쿄 주니치 스포츠의 FC 도쿄 담당이었던 다카하시 마사카즈 기자는 처음 카지야마를 봤을 때의 인상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왠지 그곳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왠지 미끄러지듯 드리블로 빠져나가 버렸다. 하라 씨는 분위기나 체격이 비슷한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같은 선수가 되길 바란다고 자주 말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축구 선수를 묘사하는 말이 아닌 ‘눌’이나 ‘변태’라고도 자주 불렸다. 그것 또한 그의 독창적인 개성이었다. 누군가의 꿈을 짊어진 카지야마는 많은 부상에 시달리며 2018년에 스파이크를 벗었다.
원하던 커리어를 걸었다고는 아마 그때의 우리도, 본인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선수도 없다. 이렇게 글자 수로는 아직도 이야기가 부족하다. 죄송합니다, 생맥주 한 잔 더 부탁드립니다.
글: 바바 코헤이(프리라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