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기장의 기억 vol.1 #ThisisTOKYO

칼럼2022.3.28

국립경기장의 기억 vol.1 #ThisisTOKYO

드디어 4월 29일(금·공휴일), 도쿄가 새 국립경기장에서 첫 J리그 경기를 치른다.

개수 이전의 국립경기장에서는 J리그 가입 첫 해부터 많은 공식 경기를 치러왔다. 기억에 남는 슈퍼 플레이도 있었고, 임팩트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타이틀 획득 이후, 도쿄가 모든 타이틀을 국립경기장에서 획득한 것은 도쿄와 국립경기장의 깊은 인연을 상징한다.

우리의 국립경기장.

This is TOKYO.

새로운 발걸음을 국립경기장에서 새기기 전에, 지금까지 국립경기장에 남겨온 발자취와 추억을 당시 사진과 함께 되돌아본다.


1999년 4만 명을 모은 첫걸음과 환상의 3rd 유니폼

【경기 정보】
1999 J리그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준결승 2차전
FC 도쿄 1-1 가시마 앤틀러스

엠블럼 아래에는 "HERE WE ARE! “KOKURITSU” 6th Oct '99"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날, 그 세로 줄무늬의 서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과 그것을 손에 쥔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FC 도쿄가 창설되어 J리그 가입 첫해로 J2리그를 치른 1999 시즌. 최종전에서 J1리그 승격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참가한 J리그 야마자키 나비스코컵에서는 베스트4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전신인 도쿄 가스 풋볼 클럽 시절에는 천황배에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컵 대회에 매우 강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이 나비스코컵에서도 J1의 비셀 고베,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차례로 격파했다. J2리그에서의 도약이 결코 요행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준결승 상대는 가시마 앤틀러스였다. 전년도 J리그 챔피언이자 97년 천황배에서 도쿄 앞에 버티고 섰던 벽이기도 하다. 이 경기에 걸린 팀의 각오는 상당했다. 9월 26일 원정에서 치른 1차전은 가시마가 2-0으로 승리했고, 2차전에서 도쿄는 "3점 차 이상 승리"가 요구되었다.

홈 경기로 맞이하는 첫 번째 빅 매치. 장소는 국립경기장. 클럽은 서드 유니폼을 제작했으나, 당시 시즌 중반 등록이 허용되지 않아 입장할 때만 착용했다. 이것이 ‘환상’이라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10월 6일, 40,885명의 관중이 모인 흐린 하늘의 국립경기장.

1차전에서 잡은 2점 차를 지키려는 가시마에 맞서 도쿄는 적극적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팽팽한 전개 속에 전반은 득점 없이 마무리되었다. 후반 초반 54분에는 알미르 선수가 찬 프리킥을 아마라오 선수가 오버헤드킥으로 연결했다. 이 흘러나온 공을 카브라키 토오루 선수가 화끈하게 차 넣으며 골을 뽑아냈다. 기다리던 선제골로 기세를 탄 도쿄는 이후에도 사토 유키히코 선수가 오른쪽 사이드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퍼부었다. 수호신이었던 호리이케 히로미츠 선수의 이탈로 인해 처음으로 국립 경기장 그라운드에 선 스즈키 타카유키 선수의 좋은 플레이도 놓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81분, ‘진심의 가시마’에게 코너킥에서 아키타 유타카 선수의 득점을 허용하며 무승부로 끝났다.

결승 진출은 이루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가시마를 괴롭혔던 것은 큰 자신감이 되었다. 한편, 힘을 다한 이 선전이 직후의 리그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J1리그 승격을 향해 고생하게 되었지만, 그 모든 경험이 클럽의 확실한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적합한 팀이 적합한 장소로――. 그 예감과 기대가 크게 부풀어 오른 경기이기도 했다.

Text by 후지와라 유우(프리라이터)